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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고린도전서(1 Corinthians)1:1 - 1:9

고린도전서(1 Corinthians)1:1 - 1:9

 

  •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https://sum.su.or.kr:8888/bible/today

 

성서유니온선교회

 

sum.su.or.kr:8888

 

분열된 공동체를 위한 바울의 처방전: 고린도전서 1장이 주는 5가지 반전의 메시지

1. 서론: ‘문제적 공동체’라는 현실, 그리고 유토피아의 이면

우리는 누구나 완벽한 공동체라는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갈등이 없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며, 하나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이상적인 조직을 갈망하곤 하죠. 하지만 현실은 늘 차갑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예외 없이 파당이 나뉘고, 권위는 도전받으며, 사소한 다툼이 거대한 분열로 번지곤 합니다. 2천 년 전 성경 속 ‘고린도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파당 정치, 지도자를 향한 비난으로 점철된 이곳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적 공동체’의 전형이었습니다.

이 난처한 난국 속에서 사도 바울은 과연 어떤 지혜를 꺼내 들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장의 문을 여는 바울의 처방전은 갈등의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관점의 ‘반전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2. [포인트 1] 내세울 것 없는 권위: "내가 사도인 이유는 내 열심이 아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매우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보낸 편지에서 그저 자신의 이름만 겸손히 소개했던 것과 달리, 고린도 교회에서 유독 사도직을 강조한 이유는 그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 공동체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울이 권위를 세우는 ‘방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경력이나 개인적 열심을 증거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사도직이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 자신의 사도됨이 신적인 기원에 의한 것이지 인간적인 선택이나 열심에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소명 의식은 신분을 뽐내기 위한 훈장이 아니라, 자신이 선포한 복음에 대한 확신 그 자체였습니다. 참된 권위는 인간적인 쟁취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명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바울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포인트 2] 소유권의 반전: "이곳은 누구의 교회도 아닌 하나님의 교회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 아볼로, 게바 등 특정 지도자를 우두머리로 세워 파당을 형성했습니다. 누구의 가르침이 더 세련되었는지, 누구의 인맥이 더 두터운지를 두고 주도권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교회’로 재정의하며 일침을 가합니다.

  • 특정 파당의 전유물 거부: 교회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 용어의 전략적 선택: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자칭 ‘그리스도파’라 주장하며 분파적 행동을 일삼던 이들이 이 용어를 자기 정당화의 도구로 악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 바울은 인사말에서 ‘주(Lord)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반복합니다. 공동체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뿐임을 인정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은혜와 평강이 흐를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4. [포인트 3] 은사의 역설: "가장 뛰어난 재능이 분열의 씨앗이 되다"

고린도 교회는 소위 ‘스펙’이 좋은 교회였습니다. 웅변술을 포함한 모든 ‘언변’과 복음에 대한 깨달음인 ‘모든 지식’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으로 볼 때 가장 큰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성숙(Maturity)과 은사(Gifts)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재능과 인격의 괴리: 뛰어난 재능과 지식은 공동체의 유익이 아닌 자기 자랑과 교만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화려한 구변을 ‘교만한 자의 말’이라 꼬집으며,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닌 능력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 바울은 이 문제의 원인이 된 은사들에 대해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비록 잘못 사용되고 있을지라도, 그 풍성한 은사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 안에 뿌리내렸음을 증명하는 외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5. [포인트 4] 비상식적인 감사: "상처를 준 이의 등 뒤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아픈 손가락’ 그 이상이었습니다. 자신을 사기꾼으로 몰고 사도권을 부정하는 그들로 인해 바울은 큰 낙담과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해 진심 어린 감사를 고백합니다. 이 감사가 놀라운 이유는 감사의 근거가 자신의 유익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고린도교회의 도전으로 인해 심한 슬픔을 느끼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 감사의 내용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유익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허물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 여전히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보다,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분열의 골을 메우는 바울만의 ‘비상식적인’ 처방이었습니다.

 

6. [포인트 5] 확신의 근거: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

바울이 보기에 고린도 성도들은 여전히 책망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결국 마지막 날에 ‘흠 없는 자’로 세워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 하나님의 신실하심: 바울의 시선은 ‘종말론적 확신’을 향해 있습니다. 현재의 분열과 미성숙은 완성되어가는 과정의 진통일 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신실하시기에 결국 우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 코이노니아(Koinonia)로의 부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는 것, 즉 ‘코이노니아’입니다. 인간적인 조건으로 뭉친 분파는 깨지기 쉽지만, 그리스도와의 교제라는 근원적 연합 안에 머물 때 공동체는 비로소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빚어집니다.

 

7. 결론: 당신의 존재는 하나님의 '기쁜 뜻'의 결과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고, 고린도인들은 희망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도로, 그리고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신분과 구원은 개인의 공로나 자격이 쟁취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신실하신 사랑이 빚어낸 선물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며 우리를 급수로 나누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만난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입혀 주셨습니다. 오늘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는 내 힘으로 버티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당신을 붙들고 있는 자리입니다.

[생각해볼 점] 세상은 끊임없이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만, 조건 없는 은혜를 입은 당신은 오늘 누구에게 그 평강을 전하겠습니까?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서운함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PJgR4vs0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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